테스트 문화

MBTI 다음은 ○○BTI — 우리는 왜 계속 유형 테스트를 할까

디저트BTI, 폰BTI, 술BTI까지. 근거가 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유형 테스트를 계속 하게 되는 이유를 바넘 효과와 자기 개방의 관점에서 정리했습니다.

MBTI가 유행한 뒤로 온갖 것이 유형이 됐습니다. 폰BTI, 술BTI, 라면BTI, 그리고 디저트BTI까지. 근거가 탄탄하지 않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는데도 계속 하게 되죠. 왜 그럴까요?

먼저, 잘 맞는다는 느낌의 정체

유형 테스트를 하면 “어떻게 알았지?” 싶은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느낌에는 잘 알려진 이름이 있어요. 바넘 효과(Barnum effect), 또는 포러 효과라고 부릅니다.

1948년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가 한 실험이 유명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각자에게 맞춘 성격 분석 결과라며 문서를 나눠주고 얼마나 정확한지 평가하게 했어요.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매우 높은 정확도를 매겼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학생이 똑같은 문서를 받았습니다. 점성술 잡지에서 짜깁기한 문장들이었죠.

그 문장들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당신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비판적인 편입니다.” “겉으로는 잘 통제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해당되면서 긍정적인 방향의 문장. 이런 서술은 거의 항상 “맞다”는 반응을 얻습니다.

그럼 다 무의미한 걸까

그렇게 결론 내리면 오히려 재미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람들이 유형 테스트를 하는 이유가 정확한 진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1.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2012년 하버드대의 다이애나 타미르와 제이슨 미첼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뇌의 보상 관련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실험에서는 돈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선택하는 경향까지 관찰됐어요.

유형 테스트는 자기 이야기를 할 구실을 만들어줍니다. “나 ESTP래” 한마디면 대화가 시작되니까요.

2. 나를 설명할 언어가 생깁니다

“저는 성실한 편이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요”보다 “저 마카롱 같대요”가 더 빨리 전달될 때가 있습니다. 비유는 정확하진 않아도 분위기를 압축해서 옮기는 데 강해요.

3. 관계의 어긋남을 덜 아프게 설명해줍니다

“너는 왜 그렇게 무심해”가 “우리는 유형이 다르네”로 바뀌면 대화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이건 유형론이 학문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비난이 아닌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입니다.

그래도 알아두면 좋은 선

즐기는 건 좋지만 몇 가지는 구분해두면 좋겠습니다.

  • 사람을 미리 판단하는 데 쓰지 않기. “저 사람 무슨 유형이래” 하는 순간 확증 편향이 작동합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유형에 맞춰 해석하게 되죠.
  • 채용이나 평가에 쓰지 않기. 재미로 만든 테스트는 물론이고, 널리 쓰이는 유형 검사들도 그런 용도의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 나를 가두는 데 쓰지 않기. “나는 원래 이런 유형이라 안 돼”는 유형 테스트의 가장 안 좋은 사용법입니다. 유형은 설명이지 한계가 아니에요.

잘 쓰는 방법

반대로 이렇게 쓰면 꽤 쓸모가 있습니다.

  1. 결과를 대화의 시작점으로 쓰기. 친구와 각자 결과를 낸 뒤, 서로가 예상했던 유형과 맞는지 비교해보세요.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2. 맞는 부분보다 안 맞는 부분을 보기. “이건 나랑 다른데?”라고 느낀 지점에 오히려 정보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도 자기 이해예요.
  3. 시간을 두고 다시 해보기. 몇 달 뒤 결과가 달라졌다면 그 사이 무엇이 변했는지 생각해볼 재료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유형 테스트는 거울보다 대화의 문에 가깝습니다. 정확히 나를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나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드는 장치죠. 그래서 결과가 100%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재밌는 겁니다.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니까요.